사랑의 단상 공연



부재로부터 사랑은 인식된다.



캐스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숙취에 쩔은 몸을 이끌고
혼자서
크리스마스에
대림미술관에
다녀왔다.

공연은 아주 좋았다. 캐스커 공연은 이번으로 세번째로 보는 것이다. 
앞의 두 번은 모두 일렉트로닉 셋이었는데 오늘은 어쿠스틱 셋이었다.
앞서 아진, 파니핑크의 홍재목의 공연도 좋았다.
파니핑크 시절 음악을 많이 들어보지 못했는데 찾아들어야겠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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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지불식간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찾아왔었다.
그 때의 나는 일방적인 감정을 전하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었지만,
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했다.
그 후 그와 접점은 거의 생기지 않았고, 감정은 애매하게 남아있었지만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.
나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도 잘 모르는데,
나와 아주 먼 곳에 있는, 다른 세계의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은 더욱 깜깜하기만 할 뿐이었다.
매일 엿보고, 엿듣는 것이 다였다.

그러던 와중 어제 지인을 통해 우연히 들었다.
상대방은 나를 잊었다 한다.
그는 이제 나를 모른다.

상대방이 나를 모른다해서 짝사랑이 시작되지 말란 법도 없고,
상대방이 나를 잊었다고해서 그 사랑이 끝나라는 법도 없다.
그렇지만 나는 왜인지 이젠 이 감정을 끝내야 한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.
정말 문자그대로, '아무것도 아닌'것을 1년 반 가까이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,
-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.
전하지도 못하고,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는 지지부진한 감정.
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감정만 부여잡을바엔 차라리 조공이라도 맘껏 바칠 수 있는 팬질이 낫겠다싶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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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림미술관을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광화문과 종로를 걸었다.
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몇달만의 일로, 
가만히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고 계속 생각했다.

감정의 청산은 단칼에 되는 일이 아니니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정리했고,
새해가 다가오고 내가 몸담을 곳도 정해졌으니 그에 따른 계획을 조금 생각해보았고,
정리되지 못한 감정은 그대로 곡으로 남겨두자고 마음먹었다.

혼자 음악을 들으며 도로를 따라 걸을 때, 생각정리가 제일 잘 된다.
오늘은 그렇게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인 날이었다.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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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대의 부재는 나의 그리움과 사랑을 불러오나,
나의 부재는 그 어떤것도 이루어 낼 힘이 없다.
그러니 이제 여기까지만.